The Women’s Time, Narrative and Nation : A Symptomatic Reading of the Eileen Chang(張愛玲)’s Chuanqi(傳奇) 임우경 Im WooKyung
중국현대문학 , (55), (55), 2010.12, 1-33 (33 pages) The Journal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 (55), (55), 2010.12, 133 (33 pages)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The Korean Society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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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 (2010). 여성의 시간, 서사 그리고 민족. 중국현대문학, (55), 1-33. 이화여자대학교 203.255.190.49 2016/05/24 22:5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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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간, 서사 그리고 민족
* 1)
― 張愛玲 傳奇 傳 奇 의 징후 읽기
임우경
<目
** 2)
次>
1. 장아이링 연구와 민족상상 2. 傳奇 증정판의 ‘不安’ 不安’ 3. 엿보기: 경계 바깥의 히스테리 주체 4. 디테일: 귀환되는 기억들의 거소 參差對照: 민족상상의 낯선 균열 혹은 보충 5. 參差對照:
1. 장아이링 연구와 민족상상
2007년 가을, 중국대륙에서 리안의 영화 「색, 계」에 대한 호기심과 黃紀蘇)를 비롯한 좌파민족 찬양이 주류언론을 차지하고 있을 때 황지수 (黃紀蘇
주의자들은 그것이 민족의 영웅을 모독하고 한간을 미화한 ‘한간영화’라 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들의 비판은 영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원작자 인 장아이링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이어졌다 .1) 그 결과 「색, 계」 논쟁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 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과제번호: KRF-2007-356-A00022 **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email protected] 1) 임우 임우경 경, 「「색, 계」 논쟁, 중국 좌파 민족주의의 굴기 혹은 위기」, 황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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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張愛玲 傳奇 傳 奇 의 징후 읽기
임우경
<目
** 2)
次>
1. 장아이링 연구와 민족상상 2. 傳奇 증정판의 ‘不安’ 不安’ 3. 엿보기: 경계 바깥의 히스테리 주체 4. 디테일: 귀환되는 기억들의 거소 參差對照: 민족상상의 낯선 균열 혹은 보충 5. 參差對照:
1. 장아이링 연구와 민족상상
2007년 가을, 중국대륙에서 리안의 영화 「색, 계」에 대한 호기심과 黃紀蘇)를 비롯한 좌파민족 찬양이 주류언론을 차지하고 있을 때 황지수 (黃紀蘇
주의자들은 그것이 민족의 영웅을 모독하고 한간을 미화한 ‘한간영화’라 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들의 비판은 영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원작자 인 장아이링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이어졌다 .1) 그 결과 「색, 계」 논쟁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 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과제번호: KRF-2007-356-A00022 **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email protected] 1) 임우 임우경 경, 「「색, 계」 논쟁, 중국 좌파 민족주의의 굴기 혹은 위기」, 황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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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現代文學 第55 第 55號 號
은 중국대륙에서 장아이링에 대한 평가 및 연구사에 있어 또 하나의 분 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아이링에 대한 거센 민족주의적 비판이 개 혁개방 이래 주류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던 신계몽주의적 관점과 격렬 하게 충돌했기 때문이다. 장아이링 본인은 ‘정치적 무관심’을 표방했음에 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늘 정치와 민족상상의 한 가운 데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퍽 아이러니하다 . 돌아보건대 중국대륙에서 장아이링 연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1943~1952)는 홍콩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상하이 에서 장아이링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이고 , 두 번째 시기 (1949~1978)는 신민주주의 사관에 의해 문학제도가 일률적으로 국가체
제에 편입됨에 따라 문학사에서 장아이링이 완전히 사라졌던 시기 , 마지 막 세 번째 시기(1978~)는 그간 정치를 본위로 하던 신민주주의 예술사 관을 부정하고 역사 속에 사라졌던 작가작품을 새로이 발굴하고 평가함 에 따라 장아이링 붐이 일어난 시기이다 . 그런데 그중 장아이링 문학의 여성세계에 대한 연구는 많으나 그것을 민족 / 국가와의 국가와의 상호관계성 속에 서 고찰한 연구는 의외로 많지 않다 . 민족 / 국가와 국가와 관련하여 장아이링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단순화시키자면 , 첫째, 민족 민족주 주 의적 입장, 둘째, 신계몽주의적 입장, 셋째, 여성주의적 입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陳遼, 何萬子 何萬子를 대표로 하는 민족주의적 입장은 장아이링을 첫 번째 陳遼,
한간작가로 구분하고 비판한다 . 사실 장아이링은 ‘대동아공영’이나 ‘동아 신질서 신질 서’ 같은 친일적 내용을 선전한 적이 없으며 , 일본의 전쟁을 찬양하 거나 고무하기 위한 어떤 정치적 활동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장아이링을 한간작가로 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 다. 우선 장아이링의 ‘정치적 무관심’ 자체가 문제시된다. 윤함구 문단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비정치적 문학 , 예를 들어 유한문학, 포르노문학, 애 정문학 정문 학, 괴담문학, 야사문학 등이 점령구의 비참한 정치적 현실을 은폐
제59호, 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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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민중들의 투쟁의지를 해소시켰으며 그 결과 적나라한 친일문학보 다 그 폐해가 훨씬 더 컸다는 것이다 .2) 둘째, 일본점령 시기에 문학활동 을 했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된다. 윤함시기 문단 자체가 대개 친일 출 판사나 잡지, 자금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셋째, 무엇보다 친일파 후란청과 결혼했다는 점은 그녀가 한간이라는 가장 명백한 증거로 꼽힌 다.3) 그러나 이들 민족주의적 입장은 텍스트에 대한 정치한 분석보다는 대개 문학 외적 사실들에 근거하고 있어 논리적으로 비약적이다 . 무엇보 다 민족주의적 입장은 자칫 문학을 정치적 민족적 이념에 종속시키는 획일적 억압논리로 빠지기 쉬우며, 장아이링의 문학세계가 보여주는 독 특한 여성세계를 아예 무시하거나 반민족적인 것으로 보는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논리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 . 사실 이 같은 민족주의적 관점 은 그동안 소수에 불과했으나 이번 「색, 계」 논쟁을 거치며 그 지지기반 이 대폭 확대되었으며, 중국민족주의가 고양됨에 따라 앞으로도 상승세 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신계몽주의적 관점은 현재 중국의 정치 , 경제, 문화를 관통하 는 주류이데올로기로서, 장아이링 텍스트를 국민성 비판 , 봉건성 비판, 인성 비판의 코드로 읽는다. 재미학자 샤즈칭(夏志淸)이 장아이링이야말 로 중국현대문학사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추켜세운 것처럼 , 이 관점 은 장아이링이 전통사회의 암흑과 왜곡된 인성을 깊이 있게 파헤쳤으며 그 예술적 기교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 1980년대부터 형 성되기 시작한 신계몽주의는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중국의 현대사를 사 회주의적 봉건사회로 규정하고 그 대신 시장주의에 기반한 서구적 현대 화를 추구한다. 신계몽주의에 힘입어 문학의 주된 판단기준이 ‘정치제일’ 에서 ‘반봉건성’, 혹은 ‘근대성’으로 넘어 왔고 ‘문학의 탈정치화’, ‘문학사 다시 쓰기’ 등 일련의 구체적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장아이링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재평가되고 복권되었다.
2) 裴顯生,「談論淪陷區文學硏究中的認識誤區」, 文藝報, 2000년 4월 18일. 3) 陳遼, 「淪陷區文學評價中的三大分岐」, 江西行政學院學報, 2001年 3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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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몽주의는 자유주의부터 (신)좌파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하 지만 그것이 봉건과 현대라는 이분법에 기대는 또 하나의 민족상상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온건하지만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을 내포한다. 예컨대 장아이링을 한간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면서 도 장아이링 텍스트의 소재가 연애나 남녀이야기에 국한되어 있고 거시 적인 역사적⋅사상적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루쉰처럼 위대한 작가는 아니라는 관점도 이에 속한다. 傅雷, 柯靈, 唐文標, 劉再復 등이 모두 지 적하고 있는 이른바 역사적⋅사상적⋅사회적 통찰의 부족이란 대개 남 성중심적 가치를 내면화한 평가이기 쉬운데 , 이는 현재 중국의 장아이링 연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교과서적 평가이다 . 1980년대 이래 신 계몽주의적 흐름은 한편으로 체제와 이데올로기로부터 문학의 독자적 공간을 대폭 확대시킴으로써 중국현대문학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의 강렬한 자본주의적 근대 지향성은 또 다른 한계를 노정한다 . 무엇보다 그것은 중국현대사가 보여준 ‘탈근대적 근대성’의 복잡다단 함을 숙고하기에 역부족이며, 심지어는 걸핏하면 모든 것을 아직 자본주 의적 근대를 완성하지 못한 중국의 봉건성 문제로 환원시킨다 . 그 안에 서 여성작가, 혹은 여성문학 등에 대한 연구 역시 추상적 남성을 기준으 로 한 이성과 보편적 휴머니즘이라는 근대 이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문제의 원흉은 모두 전통적 가부장제가 되고 그것을 대변하는 ‘봉건성’이라는 말은 점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신비화되어 간다. 여성억압을 봉건성의 문제로 고착 시키려 하는 관점은 1) 전통과 현대를 딱 잘라 마치 현대사회는 여성이 완전히 해방된 사회인 듯한 착각을 낳고 , 2) 5⋅4 반전통주의와 마찬가 지로 구여성 대 신여성이라는 이분법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양쪽 모두를 타자화하게 되며, 3) 여성의 특수한 문제를 ‘인성’ 혹은 ‘국민성’이라는 보편적 문제로 헤쳐 놓기 쉽다 .4) 4) 임우경, 중국의 반전통주의 민족서사와 젠더(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4) 서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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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林幸謙, 劉思謙, 姚玳玫, 屈雅君 등 대부분의 여성주의적 연 구는 장아이링의 텍스트가 어떻게 남성중심적 가치를 전복하는지에 주 목하고 그 속에서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 문제는 여성주의적 연구 역시 상당수가 신계몽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까닭에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위에서 지적한 문제를 똑같이 노정한다는 점이 다. 또한 그것이 장아이링의 텍스트를 남성적 민족주의에 대한 저항서사 로 간단히 치부하는 것도 문제다 . 여성적 원리를 유토피아적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섣불리 여성을 역사 밖으로 내모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장아이링이 분명 남성중심적 거대서사로서의 민족주 의는 ‘남성병’이라고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 스스로 중국인으로서 의 정체성을 포기한 적은 없으며 그와 같은 중국상상은 장이이링 텍스 트의 식민적 현실에 대한 재현 속에 종종 드러나기 때문이다 . 문제가 더욱 복잡한 것은 첫 번째의 민족주의적 입장은 물론이고 신 계몽주의나 여성주의적 입장의 연구 역시 알게 모르게 중국의 민족상상 에 장아이링의 텍스트를 전유한다는 점이다 . 예컨대 1990년대 이래 형 성된 중국대륙의 상하이 노스탤지어 현상은 193,40년대 세계의 창구라 일컬어지던 상하이의 휘황한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재현함으로써 중화민 족의 현대화 열망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민족상상의 대중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장아링은 바로 그 노스탤지어를 구성하는 강력한 문화적 기호로서 소비되었다. 또 198,90년대 장아이링에 대한 타이완 사람들의 열광적인 사랑은 그녀가 타이완에서 ‘중국상상’의 강력한 자원으로 활용 되었음을 시사한다.5) 그런가하면 타이완 독립파의 대표격인 천팡밍 (陳芳 明)이 새로운 타이완신문학사에 장아이링을 기꺼이 수용하고자 한 것은
장아이링의 문학으로부터 탈식민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 다.6)
5) 邱貴芬, 「從張愛玲談臺灣女性文學傳統的建構」, 閱讀張愛玲(臺北: 麥田出版 社, 1999) 참고. 6) 陳芳明, 「張愛玲與臺灣文學史編纂」, 閱讀張愛玲(臺北: 麥田出版社, 199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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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이링의 ‘정치적 무관심’, 혹은 강렬한 여성의식에도 불구하고 이처 럼 그녀의 텍스트가 타이완과 중국대륙 모두에서 새로운 민족 / 국가와 현 대성을 상상하는 다양한 민족서사에 의해 전유된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근대 민족주의는 늘 여성문제에 대한 발견 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고자 해왔으 며, 그 결과 ‘여성’은 늘 민족주의 담론의 각축장이 되어왔다는 점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많은 여성작가들 중 왜 유독 장아이링이 더 많이 선호되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 더구나 민족상상 자체를 남성만의 전유물로 전제하는 것은 여성이 민족 의 주체로서 자신을 어떻게 상상해 왔는가를 처음부터 볼 수 없게 만든 다. 그렇다면 혹여 장아이링의 여성 텍스트 내부에 민족상상을 유발하는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리고 바로 그 구조야말로 남성의 언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언어로 여성이 민족상상에 개입하게 되는 독특한 경 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본 논문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선행하는 연구성과 를 비판적으로 넘어서는 한편 여성과 민족 / 국가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 성을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장아이링의 소설이나 산문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시도 하기보다는 전기(傳奇) 증정판의 새로운 구성―「독자에게(有幾句話同 讀者說)」, 「중국의 주야(中國的日夜)」, 그리고 표지그림―을 주텍스트로
삼아 ‘징후 읽기symptomatic reading’7)를 시도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기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불안’의 효과가 어디에서 비롯되며 그
7) 프로이트가 꿈에 대한 환자의 이해를 해석하는 데 응용하고 알튀세르가 마 르크스를 해석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론. 흔히 텍스트가 말하고 있는 것의 재 해석이 아닌, 말하지 않은 것, 비의도적 침묵, 생략, 의식하지 못한 불연속과 갭 등을 재발견하는 독해를 말한다. 알튀세르의 symptomatic reading은 국 내에서 보통 ‘징후적 독해’로 번역하지만 신광현은 그것이 오역이며 ‘reading’ 이 행위, 내용, 방법을 고루 지칭한다는 점과 ‘symptomatic’ 이 징후를 읽고 징후로 읽는다는 뜻을 갖는다는 점을 모두 강조하기 위해서는 ‘징후 읽기’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그의 주장에 따라 ‘징후 읽기’로 쓴다. 신광현, 「‘징후 읽기’와 읽기의 징후화」, 영미문학연구 제15권(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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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어떻게 남성들의 계몽주의적 민족서사를 불안하게 변형시킴과 동 시에 이질적 민족상상을 틈입시키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
2. 傳奇 증정판의 ‘불안 ’
장아이링을 한간이라고 비판한 것은 영화 「색, 계」 논쟁이 처음은 아 니었다. 그 비판이 가장 극성이었던 것은 역시 일본패망 직후였다 . 일본 패망 직후 연일 크고 작은 매체에 한간들에 대한 가십 기사가 넘쳐난 것은 물론이고, 女漢奸醜史, 女漢奸臉譜, 文化漢奸罪惡史와 같은 책들도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들은 汪精衛, 周佛海의 부인과 함께 胡蘭 成의 부인이었던 장아이링을 한간으로 지목하여 비난했다 . 이들이 장아
이링을 ‘女漢奸’, ‘女文奸’이라고 비난한 이유는 대개 그녀가 역적 후란청 의 ‘첩’이었다는 데 있었다.8)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 즈음 후란청은 국민당 수배를 피해 피신하여 또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사 실이다. 실연으로 괴로워하던 장아이링은 자신의 거액의 위자료를 후란 청에게 보내고 결국 그와 헤어지고 말았다 . 실연의 고통에다 경제적 곤 란에 직면하게 된 것도 모자라 밖으로는 바로 자신을 버린 후란청 때문 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 상황에서 1년이 넘도록 침묵하던 장아이링이 다시 공식적 활동 을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1946년 10월 전기 증정판의 출판이었다. 증정판에는 추가 수록된 5편의 단편소설 외에 서언 「독자에게(有幾句話 同讀者說)」와 발문 격인 산문 「중국의 주야(中國的日夜)」가 추가되었으
며, 표지그림도 새로 바뀌었다. 표지 디자인과 제자(題字)를 포함한 증정 판의 모든 구성은 장아이링이 기획했고 그녀의 팬이었던 꽁즈팡 (龔之方)
8) 陳子善, 「1945-1949年間的張愛玲」, 林幸謙 編, 張愛玲: 文學⋅電影⋅舞臺 (HongKong: OXFOR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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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도움으로 상하이 山河圖書公司에서 출간되었다. 꽁즈팡은 장아이링이 위자료 지불로 인한 경제적 곤란 때문에 증정판 출판을 추진하게 된 것 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다시 활동을 재 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들에 대해 입 장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렇다면 전기 증정판의 새로 운 구성을 통해 장아이링은 한간설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고자 했을까 ? 과연 서언 「독자에게」는 바로 한간설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과 증정판 의 새로운 구성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 우선 「독자에게」의 첫 머리에서 장아이링은 문화한간이라는 항간의 비난에 대해 해명같은 것 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지인들의 염려가 큰지라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서언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이어서 그녀 는 한간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그 이유로 그동안 작품 속에서 한 번 도 정치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과 친일과 관련된 어떤 대가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유일하게 한간이라는 혐의가 있다면 첫 째 대동아공영문인대회 참석자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올랐던 사실과 둘 째는 후란청과의 관계일 텐데, 첫 번째의 경우 초대받은 것은 사실이나 바로 거절한 뒤 참석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의 경우는 엄연한 사생활에 속하므로 대중 앞에 해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 이를 통해 보 건대 장아이링 자신은 한간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원칙이 있으며 그 원 칙을 깨지 않았다는 점에서 떳떳하다고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발문으로 수록한 「중국의 주 야」라고 할 수 있다. 「독자에게」의 설명에 의하면 이 산문은 일본 패망 후 어느 날 시장에 나갔을 때의 감회를 두 편의 시로 썼다가 후에 해설 을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중국의 주야」가 소설집 전기에 실 린 모든 작품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전기 마지막의 여운(傳奇末 了的餘韻)”으로서는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 이는 전기라는 소설집의
마지막을 「중국의 주야」로 마무리해도 무방하다는 말일 텐데 , 이를 「중 국의 주야」의 내용과 연결지어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 발견된 다. 산문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던 작품 속 두 번째 시는 외세가 물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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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순전히 ‘우리들(自己人)’만 남아 북적거리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화자의 감개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9) 제목이 ‘중국의 주야’인 만큼 여기서 ‘우리들’이란 의심의 여지없이 중국인일 것이다 . 앞 서 장아이링의 말대로 그녀가 스스로 민족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다면 , 이 시는 평범한 민족 구성원으로서 느꼈을 법한 광복의 기쁨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독자에게」의 첫 부분이 한간설에 대한 직접적 반박이라면, ‘중국’에 대한 애정이 이처럼 전경화되는 산문 「중국의 주야」 는 한간설에 대한 간접적 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물론 장아이링을 한간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이 시는 오히려 장아이링이 얼마나 기회주의적인가를 보여주는 예로 거론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그런데 「중국의 주야」를 기회주의적 작품으로 성급히 단정 짓기 전에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장아이링이 단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간 접적으로 밝힌 데 그치지 않고 , 이 산문을 “전기 마지막의 여운”으로 어 울린다면서 자신의 전체 작품세계와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 이는 전기 의 작품세계가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그간 자타의 평가 를 뒤집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 내용상 ‘식민의 끝’, ‘광복’ 이라는 민족적 사건을 배경으로 ‘중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흔연히 드러내 는 「중국의 주야」가 “전기 마지막의 여운”을 장식한다는 말은 곧 소설집 전기의 傳奇性이 실은 ‘식민’이라는 민족적 차원과 관련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만약 다분히 의식적인 작가의 배치와 그 의도를 충분 히 긍정한다면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민족적 층위 속에서 전기의 ‘정 치적 무관심’을 읽어내는 일이 필요해진다 . 전기의 전기성과 ‘정치적 무관심’은 과연 어떻게 민족이라는 의미망과 연계되어 있을까 ? 흥미진진하게도 장아이링은 여기서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동시에 제 공하고 있다. 장아이링은 「중국의 주야」에 대한 설명에 이어 새로 바뀐
9) “我的路 / 走在我自己的國土 / 亂紛紛都是自己人 / 補了又補, 連了又連的 / 補釘的彩雲 的人民 / 我的人民 / 我的靑春 / 我眞高興曬着太陽去買回來 / 沈重累贅的一日三餐 // 譙 樓初鼓定天下 / 安民心 / 嘈嘈的煩冤的人聲下沉 / 沉到底 / 中國, 到底”, 張愛玲, 「中國 的日夜」, 張愛玲文集4(哈肥: 安徽文藝出版社, 1992) 246-24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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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만청 때의 시녀도(侍女圖) 하나를 빌어 왔는데, 거기에는 한 여자가 조용 히 앉아 골패를 놀고 있고 그 옆에는 유모가 아이를 안고 앉아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집안 풍경이다 . 그런데 불쑥
나타난 귀신처럼 난간 밖에는 비례가 맞지 않는 사람형상이 불쑥 솟아 있 다. 현대인인 그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열심히 방안을 엿보고 (窺視) 있 다. 만약 이 그림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가 의도했던 분위기이다.”10)
여기서 유의할 지점은 장아이링이 그림 속 인물들의 불안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의 불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목이다 . 그녀의 설명 에서 ‘불안’을 느끼도록 작가가 의도한 주체는 그림이 아니라 독자가 되 기 때문이다. 장아이링이 말하는 ‘독자의 불안’을 다시 증정판 출판 당시 의 한간비난설과 연결지어 보면 표지그림에 대한 장의 설명은 곧 ‘독자 들이 나를 한간이라 비판한다면 그것은 나의 작품세계가 독자들에게 불 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 여기서 ‘불 안’의 정체는 다시 민족이라는 의미망 속으로 미끄러진다 . 장아이링은 작품에서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며 ‘보통 사람들의 전기’를 쓰려고 했다는데, 그 기이함이 어떻게 독자의 ‘불안’을 야기하며, 나아가 그 ‘불 안’이 어떻게 한간설에 대한 간접 해명이 될 수 있는 걸까 ? 여기에 대한 장아이링 자신의 해석은 어디에도 없다 . 그녀는 그저 한 간이라는 비난에 대해 표지그림 하나를 던지며 전기에 불쑥 ‘불안’이 라는 아우라를 덧씌우고 있을 뿐이다 . 여기서 표지그림이 야기하는 ‘불 안’을 하나의 징후로 삼아 전기의 무의식에 대한 독해 , 즉 텍스트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 비의도적 침묵과 생략, 의식하지 못한 불 / 연속 등을 발견하는 ‘징후 읽기’가 필요해진다. 분명한 것은 증정판 표지그림은 「독 자에게」, 「중국의 주야」와 함께 한간설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구성된 상 호텍스트라는 점이며, 따라서 장아이링이 던진 ‘불안’이라는 징후는 무엇 보다 민족이라는 맥락에서 읽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10) 張愛玲, 「有幾句話同讀者說」, 앞의 책,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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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엿보기: 경계 바깥의 히스테리 주체
전기 증정판의 이 표지그림에
처음 주목했던 연구자는 양이(楊義) 였다. 그는 1991년에 출판된 중국 현대소설사에서 이 그림이 “장아이 링 소설세계와 그 정조, 색채, 분위 기를 보여 주는 비할 데 없는 상징 ” 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이 그림이 고와 금, 인간과 귀신, 세공과 속사, 화려한 성장(盛裝)과 맨몸 이미지 등의 기괴한 대비를 통해 동⋅서⋅ 고⋅금이 공존하고 있던 1940년대 상하이라는 기형적 생존공간을 암 시한다고 분석했다.11) 그후 많은 연구자들이 양이의 분석을 발전시
그림 1 傳奇 증정판 표지그림
켜 이 그림에서 기형적으로 대비되는 이원적 세계의 공존에 주목했다 . 야오따이메이(姚玳玫)의 경우 그와 같은 해석의 연장에서 장아이링의 작 품세계를 “전통과 현대 사이의 방랑 (闖蕩)”12)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현대인’과 ‘고대인’의 만남, ‘현대세계’와 ‘고대세계’의 조우로 해 석하는 것은, 김수연의 비판대로, 고대와 현대를 별개의 범주로 분리시 켜 사고하는 근대적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13)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양자의 공존과 이분법적 대비에 주목하는 경 우 흔히 그림에서 드러나는 ‘시선’의 문제를 놓치고 만다는 점이다 . 그림
11) 楊義, 「張愛玲: 洋場社會的侍女畵家」, 中國現代小說史(北京: 人民文學出版 社, 1993) 참고. 12) 姚玳玫, 「闖蕩于古典與現代之間」, 文藝硏究, 1992年 5期. 13) 김수연, 「기억과 내러티브」, 중국현대문학 제47호(200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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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 쪽이 “저녁식사 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집안풍경 ”이라면 나머지 한 쪽은 난간 너머 이 집안풍경을 바라보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현대인” 이 자리하고 있다. 이 그림을 기묘하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은 바로 만 청 시녀도에 억지로 조합된 불청객같은 현대인 형상이 아닐 수 없다 . 더 문제는 이 현대인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 장아이링 자 신의 말대로 현대인은 지금 난간 너머에서 난간 안의 풍경을 “호기심에 가득찬” 시선으로 “엿보고(窺視)”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녀도와 현대인 을 단순한 대비관계를 넘어 ‘보고’ ‘보이는’, 즉 시선의 주체와 그 대상으 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불안을 가중시킨다 . 현대인의 “엿보기”는 그림 속 집안 풍경을 대상화함으로써 시선의 권력관계를 낳으며 , 시녀도 속의 여 성인물들은 그 시선을 전혀 예기치 못했거나 또는 여전히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을 형성한다 . 시선은 그 자체가 주체와 대상을 전제로 성립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관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그렇 다면 표지그림을 분석하는 데 있어 핵심은 바로 이 시선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 전통과 현대를 병렬적 대비관계로 분석 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대개 이 관계성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재고될 필 요가 있다. 멍위에(孟悅)는 일찌감치 이 현대인의 ‘시선’에 주목하고 전통과 현대 두 경험영역의 교섭으로 만들어지는 奇幻세계, 즉 “쌍방향으로 경계를 넘는 상상력”이 장아이링 新傳奇의 출발점이라고 분석했다.14) 하지만 궁 극적으로 이 분석 역시 ‘실내와 난간 바깥’, ‘집안 풍경과 귀신’, ‘전통과 현대’를 대등한 관계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의 불안한 시 선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했다 . 한편 김수연은 과거는 현재와 한 순간도 분리된 적이 없으며 현대 안에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고 본다. 그에 따르면 표지그림의 현대인은 만청시대의 고전적 세계가 바로 자기 안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며 그들에게서 현대인 자신의 자화상을 본다. 김수연의 분석은 앞서 논자들의 고전 / 현대 이분 14) 孟悅, 「中國文學“現代性”與張愛玲」, 王曉明 主編, 20世紀中國文學史論⋅下 (東方出版中心,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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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의식적으로 지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 현대 속에 ‘온전한 형 태’로 존재하는 고대라는 분석은 결국 고대와 현대의 병치를 중첩으로 대신한 것 외의 의미를 제시하지 못한다 . 게다가 고대를 현대 속에 들어 와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그 순간 그림 속 두 개 풍경 사이의 시선과 그 긴장관계는 논의될 여지마저 없어져 버린다 . 한편 표지그림의 불안이 그림 속 두 풍경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긴 하 지만 사실 그 양자의 관계 때문에 정작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그림 속 인 물이 아니라 바로 그림을 보고 있는 제 3자, 즉 독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고 보이는 시선의 관계는 그림 속 현대인과 시녀도의 풍경뿐만 아니라 표지그림과 그 그림을 바라보는 독자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 그런 점에서 표지그림의 시선이 야기하는 불안은 그림 내부의 차원과 그림 바깥의 차원이라는 이중적 맥락을 지닌다 . 물론 독자와 표지그림 사이의 관계는 그림 속 풍경 간의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 그림 속 시녀 도의 인물들이 무심한 듯 현대인의 시선을 의식조차 못하는 것과 달리 증정판 표지그림은 독자의 시선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의도적으 로 그것을 불안으로 이끌고자 한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배 치한 것은 바로 작가 장아이링이다 . 그렇다면 그림 속의 현대인은 시녀 도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이자 동시에 그림 밖 독자들의 시선을 불안으 로 유도하는 주체로서 그림의 불안을 해석하는 데 관건적 존재이다 . 그 림 내부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을 매개하는 현대인 그는 바로 작가 자신 이기도 한 것이다. 표지그림 속의 현대인은 단순히 전통에 대비되며 공 존하는 현대 전체가 아니라 ,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세계를 ‘엿보고’ 해석 하는 작가이며, 현대인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고 있는 시녀도의 내용은 바로 작가에 의해 해석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표지그림의 현대인 형상을 ‘소문의 서술자’로 포착한 박 자영의 분석은 탁월하다.15) 박자영은 “테크놀로지로서의 소문과 이를 전 달하는 서술자는 장아이링의 서사에서 중추적 위치를 차지 ”하고 있으며, 15) 박자영, 「소문과 서사: 장아이링 傳奇 다시 읽기」, 여성문학연구 20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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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들쭉날쭉한(參差) 대조를 전달하는 유력한 테크놀로지 중의 하나 인 소문은 전기 표지에 나와 있는 ‘현대인’으로 유비”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저자로 알려지지 않은 채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법이자 상대방의 눈에 전혀 띄지 않는 자 , 이름을 알 수 없는 자가 되는 기법”16)으로서 소문 그 자체이자 소문을 전달하는 서술자이 기도 하다. 이 같은 박자영의 분석은 현대인의 시선이 바로 작가인 장아 이링의 서사 전략 및 퍼스펙티브와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줄 뿐만 아 니라 그 형상이 왜 이목구비가 없는 귀신같은 형체일 수밖에 없는가라 는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석까지 제공한다 . 현대인 형상이 주체로서의 작가이고 현대인의 엿보기가 작가의 서사 라는 행위에 대한 은유이자 그 서사적 퍼스펙티브를 암시한다면 , 그것이 독자에게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 그림에서 그 불안은 바로 난간바깥이라는 현대인의 위치와 이목구비를 알 수 없는 현대인의 비정형성에서 비롯된다. 전자가 작가의 이방인적 서사 전략과 관련된다 면 후자는 히스테리적 주체구성 전략과 관련된다 . 우선 난간이 경계를 의미한다면 난간 바깥의 현대인은 늘 경계 밖의 존재 , 즉 이방인임을 자 처하던 장아이링의 태도를 드러낸다 . 그녀는 어려서부터 이방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태생적인 ‘천재의 괴팍함’이라 소개하는가 하면17), 유무형 의 경계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되는 경험들을 끔찍한 트라우마로 묘사하 기도 했다.18) 「봉쇄」에서 사이렌 소리가 만들어놓은 시공간의 경계가 어떻게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의 경계로 바뀌는지를 탁월하게 묘사한 데 서도 보이듯이19) 장아이링은 경계와 그 경계가 만들어내는 사람들 사이 의 욕망 및 권력 관계에 특히 민감했다 . 무엇이 어떻게 어떤 경계들을 만드는가에 대한 장아이링의 민감함은 그녀를 늘 이방인의 자리에 있게
16) 한스 노이바우어, 소문의 역사(세종서적, 2001), 박자영 앞의 글 97쪽에서 재인용. 17) 張愛玲, 「天才夢」, 張愛玲文集4(哈肥: 安徽文藝出版社, 1992), 16쪽. 18) 張愛玲, 「傾城之戀」,張愛玲文集1(哈肥: 安徽文藝出版社, 1992). 19) 張愛玲, 「封鎖」,張愛玲文集1(哈肥: 安徽文藝出版社,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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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었고,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또 그만큼 그녀를 경계에 민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경계에 대한 민감함이 경계내부의 안전지대 , 혹은 중심에 속 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욕망이나 조바심의 표현은 결코 아니었다 . ‘호기 심’에 가득찬 현대인의 형상이 보여주듯이 장아이링은 오히려 이방인으 로서의 위치를 즐기는 편이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 「洋人看京戱」라는 산문에서 그녀는 ‘양인’의 시선으로 중국을 들여다보는 일의 의외성과 참신함에 대해 역설한다. 여기서 ‘양인’의 시선이란 곧 경계 바깥의 퍼스 펙티브를 의미하는데, 외부인에게는 경계내부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시선은 경계 내부의 주류나 중심 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외부인의 퍼스펙티브를 가졌지만 실은 그가 내부인이며 , 그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 역시 내부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경계내부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을 경계외부 의 시선으로 자처하는 것은 사실 경계내부의 시선에 의해 비가시화되는 것들을 가시화하거나, 주류담론에 의해 배제되는 이야기를 좀더 안전하 게 발화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가면’을 쓰는 것이며 ‘가장’하는 것이다. 그 런 점에서 표지그림 속 이목구비가 없는 현대인의 얼굴은 바로 ‘가면’과 ‘가장(假裝)’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20)
장아이링에게 난간 너머의 퍼스펙티브는 그녀 자신이 때로는 여성으 로서, 때로는 ‘몰락한 귀족’이라는 시대착오적 존재로서, 때로는 식민지 조계의 피식민자로서 경계 밖으로 부단히 내쳐진 데 대한 주변인으로서 의 경험적 태도임과 동시에 그녀 스스로 기꺼이 선택한 주변인으로서의 인식론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경계가 민족의 표지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장아이링이 「독자에게」를 쓸 때 상정했던 독자가 한간설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독자, 즉 민족주의적 독자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독자의 불안이란 곧 민족주의적 불안이라 할 수 있다 . 표지그림에서 난 간이 민족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면 , 이방인으로서의 현대인 20) 장아이링의 소설에서 ‘가면’과 ‘가장’의 히스테리 여성주체의 대표적 형상이 바로 「金鎖記」의 七巧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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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민족의 경계 바깥으로 밀려난 주변인이거나 스스로 그 내부에 서기 를 거부하는 자일 것이다. 민족적 동질성을 상상하는 주류 민족담론으로 보자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민족의 경계 바깥에서 경계에 걸쳐 있 는 자들은 모두 민족의 경계를 흐리고 위협하는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 난간 바깥에서 난간 안을 훔쳐보는 현대인 형상은 바로 그와 같은 그 존재로서 경계 안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파생하는 근원이 된다. 현대인의 엿보기가 이방인의 서사라면 , 그것은 민족을 동질적인 것으 로 상상해 내려 하는 난간 내부의 민족주의적 이념을 방해하는 훼방꾼 이기 십상이다. 이 점은 설령 이방인의 엿보기가 또 다른 민족서사라 해 도 마찬가지다. 이방인이라는 퍼스펙티브 자체가 민족서사가 수행되면서 유포되는 사이에 이질적 시간, 즉 ‘시간적 지연(time-lag)’을 더 쉽게 발 생시키기 때문이다. 호미 바바에 의하면 이 시간적 지연이란 곧 “타자의 기입과 간섭의 위치, 즉 타자의 혼성성과 이질적인 언표작용의 공간 ”21) 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속에서 여성 및 소수자들의 다양한 입지와 혼란이 민족의 교의적 시간을 불안하게 변형시키며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증정판의 표지그림은 바로 난간 바깥에 있는 현대인 의 시선을 통해 그와 같은 이질적 언표작용의 공간을 적나라하게 가시 화한다는 점에서 특히 교의적 민족서사에 포섭된 독자들에게 불안을 던 져준다. 또 한편 이목구비를 알 수 없는 현대인 형상은 언표작용의 비 / 주체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역시 불안을 낳는다 . 표지그림에서 현대인의 비정형 성은 마치 누군가의 인식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는 신호처럼 보인다 . 장아 이링은 그 처녀작 「패왕별희」에서 우희가 자신의 자살이유를 항우가 알 수 없도록 만듦으로써 남성지식인의 인식주체로서의 가능성 자체를 박 탈해 버린 바 있다.22) 주체에 의해 인식될 수 없는 존재는 , 프로이드에 21) Homi Bhabha, “DissemiNation ; Time, Narrative, and the margins of the modern nation”, The Location of Culture (Routledge, 1994). 22) 임우경, 「노라의 자살: 현대민족서사와 張愛玲의 「覇王別姬」」, 중국현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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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여성이 그랬던 것처럼, 미지의 ‘검은 대륙’으로 남아 주체의 불안을 자극한다. 또한 소매 자락의 무늬 하나하나까지 묘사된 시녀도가 그 육 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면 속사된 비정형의 현대인은 육체성을 거부 하는 존재이다. 이는 육체를 거부하는 증상들이 실은 육체의 부재를 강 조함으로써 육체를 의식하는 형식으로서의 히스테리와 유사하다 .23) 얼 굴 없는 현대인 형상이 작가라면, 작가 장아이링은 자신을 히스테리 주 체로 드러내고(顯現) 있는 것이다.24) 히스테리 증세는 억압된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 히스테리 환자가 자 신의 증상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그는 병자가 아니라 기억의 보유자이며 해석자이고 선택의 대리자가 된다 . 히스테리 환자는 곧 자신의 발작을 연출하는 작가이며, 연극과 가장의 서사를 통해 은밀히 거부를 표시한 다. 여기서 히스테리는 바로 서사의 다른 이름이 된다 . 만약 규범과 정 상성을 구축해 온 역사에서 정상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정상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히스테리라고 불러왔다면 , 표지그림에서 민족의 규범과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는 이방인의 퍼스펙티브는 히스테리적이다 . 크리스 티나 폰 브라운에 따르면 자기와 다른 사람은 언제나 히스테리적이며 , 특히 ‘다른 성’, 다른 종류 그 자체인 여성은 히스테리다 . 거기에는 ‘정상 적인 성은 남성이다’라는 합의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5) 표지그림에 서 이목구비 없는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현대인을 유독 여 성이라고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상 적인 민족상상과 규범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는 것은 물론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비정형의 현대인 , 즉 히스테리 여성주 체는 그 치료를 자처하는 남성지식인들에게는 역시 예견되지 않는 불안 학 제38호(2006) 참고. 23)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저, 엄양선 역, 히스테리: 논리⋅거짓말⋅리비도(여 이연, 2003). 24) 張愛玲 작품 속 여성인물과 히스테리의 관계에 대해서는 林幸謙, 張愛玲論 述; 女性主體與去勢模擬書寫 (臺北: 洪葉文化事業有限公司, 2000) 참고. 25)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 저, 엄양선 역, 히스테리: 논리⋅거짓말⋅리비도(여 이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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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의 여성환자로서 그의 히스테리 연구를 촉발시켰던 도라의 이름을 빌어 표지그림 속 현대인 ―히스테리 여성주체를 도라라고 명명 해 보자. 도라는 작가 자신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창조해낸 여성인물들 이기도 하다. “물항아리에 겹쳐지는 여자들의 얼굴 ”26)처럼, 그들은 여성 작가가 자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중첩시키며 창조해낸 복본 (複 本, double)27)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도라적 주체들은 중국 현대의 대
표적 민족서사가 만들어낸 민족주체로서의 노라 형상을 변형시키며 다 시 고쳐 쓴다. 이들은 여전히 노라임을 가장하지만 그 노라는 더 이상 5⋅4 민족주의 담론이 창조해낸 ‘혁명의 천사’ 노라가 아니다. 장아이링
의 산문 제목처럼, 그들의 가출은 이제 그저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가 는 일28)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강호를 떠돌면서 혁명을 논하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좀 비굴해 보이더라도 밥 먹고 사는 일 , 즉 당장의 경제적 문제들이다 . 노라형 주체가 평등과 보편이라는 기준 자체의 남성중심성을 의심하 지 않으면서 남성과의 평등을 요구한다면 , 이들 도라형 주체는 표면적으 로는 남성의 법에 순종하는 듯하면서 오어법을 통해 그 법 자체를 비트 는 가면의 전략을 취한다. 도라형 주체는 단호한 저항의 몸짓이 표면적 으로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매우 수동적인 듯 보이지만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질서를 바꿔 쓴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일 수 있다 . 이 같은 여성 형상은 5⋅4신문학 전통에서 요구되던 희생자로서의 구여성도 , 혁명의 천사로서의 신여성도 아니라는 점에서 교의적 민족서사에 낯선 상상력 을 틈입시킨다. 상반신을 난간 안으로 들이밀고 있는 저 얼굴 없는 , 아 니 가면 쓴 현대인처럼. 그리고 그들의 낯선 틈입은 어느새 여성들 자신 26) 張愛玲, 「羅蘭觀感」,張愛玲文集補遺(中國華僑出版社, 2002). 이에 대한 분 석은 임우경, 「「傾城之戀」의 쓸쓸한 계시: 계몽담론의 ‘노라’ 허상」, 중국문 화연구, 창간호(2003) 참고. 27) 林幸謙, 「張愛玲⋅女性集體想像與民族國家論述的逆反,」, 歷史⋅女性與性別 政治; 重讀張愛玲(臺北; 麥田出版, 2000). 28) 張愛玲, 「走! 走到樓上去!」, 張愛玲文集4(安徽文藝出版社,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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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역사를 일으켜 세우며 민족주의적 불안을 길게 드리운다 . 그러니 1944년 푸레이(傅雷)의 「경성지련」 비판부터 2007년 좌파의 「색, 계」
비판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남성 민족주의자들이 자신의 불안을 장아이 링에게 투사해 온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
4. 디테일: 귀환하는 기억들의 거소
이방인이자 히스테리 주체로서 현대인 형상이 표지그림 밖 독자에게 민족주의적 불안을 낳았다면, 그림 내부의 불안은 그림 속 시선과 그 시 선이 포착하는 풍경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불안 은 다시 그림 밖 독자의 불안으로 연결된다 . 만약 현대인의 엿보기가 장 아이링이 취한 히스테리 주체의 서사전략이라면 , 시녀도의 집안풍경은 그 주체의 시선이 응시하는 대상이자 서사의 결과 새롭게 재현된 세계 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히스테리 주체의 응시에 의해 귀환된 , 억압되 었던 기억들이며 심지어 억압된 기억들을 귀환시키려는 히스테리 주체 의 백일몽이자 환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그러면 구체적으로 히스테리 서사 주체는 어떤 기억들을 어떻게 귀환시키고 있는가? 표지그림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면 제일 먼저 귀환되 는 것은 여성들임을 알 수 있 다. 그 힌트가 바로 장아이링 이 빌어왔다고 말한 만청의 시녀도이다. 이 시녀도의 원 작은 다름 아니라 만청 點石 齋畵報29)의 주필이었던 우여
그림 2 吳友如의 「以咏今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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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吳友如)의 「以咏今夕」이다. 우여우루는 중국 근대 삽도(揷圖) 역사상 기념비적 존재라고 할 수 있 다. 루쉰은 여러 번 우여우루에 대해 언급한 적 있다 . 그에 따르면 당시 소설은 물론이고 교과서까지도 온통 아이들은 건달같고 여자들은 기녀 같은 우여우루식 인물삽도들이 넘쳐났는데 , 사람들이 그만큼 우여우루의 그림을 많이 봐왔고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0) 시정의 민속 화가였던 우여우루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시사뉴스와 시 정풍속을 주로 다루는 點石齋畵報 주필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1890년 본인이 직접 창간한 飛影閣畵報부터는 시녀도를 주내용으로
삼을 만큼 정작 그 개인의 취향이나 장기는 시녀도를 그리는 데 있었다 . 화집 海上百艶圖를 대표로 하는 그의 시녀도의 배경은 대부분 집안이 며, 주로 화장하고, 머리 빗고, 바둑 두고, 놀이하고, 마작을 노는 것과 같은 여성들의 일상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 그렇다면 혁명이나 전쟁 같은 인생의 ‘비양’하는 면보다 연애나 결혼 같은 인생의 ‘안온’31)한 면을 담아내고자 했던 장아이링이 “어느 집에서 나 볼 수 있음직한 집안 풍경”인 우여우루의 시녀도를 차용한 것은 자 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 그러나 1940년대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 놓고 보면 이 그림은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우여우루의 시녀도처럼 정적인 풍경으로서 전족한 구식여성의 일상이란 삽도에서나 현실에서나 주인공자리를 내놓은 지 이미 오래였기 때문이다 . 그런데 바 로 그 시대착오적 성격 때문에 증정판 표지그림에 인용된 典故로서 우 여우루의 시녀도는 두꺼운 시간의 층 , 즉 역사성을 형성하면서 여러 층 차의 서사와 시선의 문제를 개입시킨다 . 여기서 시대착오란 곧 앞에서 언급했던 언표작용의 공간으로서 ‘시간적 지연time-lag’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표지그림 속에 인용된 우여우루의 시녀도는 어떤 이질적 언표 29) 중국최초의 순간(旬刊) 화보로 상하이 <申報>의 부록으로 나왔다. 1884년 창 간되어 1898년 정간될 때까지 매회 8폭씩 모두 4천여 폭의 그림이 실렸다. 30) 魯迅, 「「朝花夕拾」後記」, 魯迅全集(人民文學出版社, 1991) 제2권, 326쪽. 31) 張愛玲,「自己的文章」, 張愛玲文集4(安徽文藝出版社, 1992)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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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의 공간을 열고 있을까 . 본격적 분석에 앞서 우여우루의 또 다른 시 녀도 하나를 참고로 보자. 이 그림에서는 시선의 주체로서의 촬영기사인 남성과 그 시선에 의해 포획되 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같은 공간에 동시에 등장한다. 이 그 림은 시선의 주체와 대상 사이 성별 권력 관계가 구성되는 근 대도입의 순간을 순진한 시각으 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재미있 다. 사실 우여우루식 시녀도의 유행 자체가 여성이 중국 근대 그림 3 吳友如의 「我見猶怜」
의 중요한 풍경이 되기 시작했
음을 알리는 중요한 문화적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상업적 시선 으로 대상화하는 근대적 시각매체 발전의 첫걸음 32)이었다면 이 그림에 서 여성을 근대적 풍경으로 포착하는 촬영기사의 시선은 바로 우여우루 자신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이처럼 ‘보고’ ‘보이는’ 관계의 형상화라 는 점에서 이 그림은 전기 표지그림과 상호텍스트를 형성한다 . 전기 표지그림은 「我見猶怜」의 남성 주체를 히스테리 여성주체로 바꾸고 , 동 일한 공간 안에 있던 시선의 주체를 난간 바깥 즉 경계 바깥으로 전치 시켰다. 이로써 전기 표지그림은 성별 주체의 전화 및 주체 위치의 전 이를 통해 우여우루의 시녀도를 완전히 새로운 맥락 속에 놓이게 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우선 시선의 대상에 대한 인식의 태도문제를 보자. 우여우루의 시녀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인 19세기 말 20세기 초만 해도 여성의 전족은 아직 보편적이었다 . 그러나 19세기 말 천족운
32) 우여우루에서 192,30년대 葉靈鳳, 郭建英, 1940년대 장아이링에 이르는 삽 도의 발전과 젠더 관계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姚玳玫, 「從吳友如到張愛玲: 19世紀90年代到20世紀40年代海派媒體‘侍女’揷圖的文化演繹 」(文藝硏究, 2007년 1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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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일어난 이후 192,30년대가 되면 방족과 천족이 점차 일반인에게까 지 자리잡게 된다. 특히 5⋅4 반전통주의의 세례를 거치며 전족은 심지 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수치스러움의 표지로 변해 버렸다 . 전족 은 민족의 야만을 보여주는 대표적 전통으로 타기되었고 , 전족한 여성도 덩달아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 이들 전족한 여성이 민족주체의 상징으로 호명되었던 신여성 노라가 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아이는 유모에게 맡겨두고 자기는 마작이나 하는 전기 표지그림 속 시녀도의 여성은 , 빙신(氷心) 「兩個 家庭」의 陳부인―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데 소홀하여 결국 훌륭한 민족
의 동량이었던 남편 천선생을 요절하게 만들었다고 비판받았던 ―처럼 심지어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33) 야만적 전통의 증거 로서 동정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여성 , 이들은 민족건설사업을 담당해 야 할 남자들의 발목을 잡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여성들로서 민족의 근 대적 주체가 될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전진에 방해가 될 뿐 이므로 사라져 버려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 . 전족과 전족한 여성은 모두 이른바 ‘남성 주도 페미니즘’이라는 반전통 민족주의에 의해 민족의 무 의식 저편으로 억압되어야 했던 것이다 . 그런데 장아이링은 표지그림의 시녀도를 통해 이렇게 민족적 필요에 의해 억압되었던 이른바 ‘구여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표지그림에 우여우루의 시녀도가 차용된 것은 그것이 대중들에 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구여성’의 형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녀도의 시선이 결코 억압적이지 않다는 점 때문이 기도 하다. 「我見猶怜」에서 같은 공간에 서 있는 동시대 남성 관찰자의 시선은 시선의 대상인 여성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다 . 그 호의적 시선 너머에 다소곳이 서있거나 앉아 있는 여성들의 자태는 반전통주의 민족 담론에 의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구여성’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 다. 그 호의적 시선 혹은 태도야말로 장아이링이 우여우루의 시녀도를 33) 임우경, 「現代家庭的設計與女性 / 民族的發現: 從氷心<兩個家庭>的悖論說起」, 現 代文學叢刊, 2008年 第3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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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 그것은 ‘구여성’을 바라보는 계몽주의적 민족담론의 혐오적 시선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 그리하 여 1940년대 전기 표지그림 속에서, 현대인의 ‘호기심에 가득 찬’ 시 선 아래 놓인 시녀도의 여성들은 바로 5⋅4이래 민족적 불안의 투사대 상으로 부단히 구성되어온 ‘구여성’ 형상에 대한 내밀한 전복이자 민족 주의 담론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읽힐 수 있다 . 당연히 계몽주의적이 고 남성중심적인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억압되어야 할 이들의 귀환이 반 가울 리 없으며, 그들의 귀환을 반기기까지 하는 히스테리 주체의 시선 은 퍽이나 불안하고 위험해 보일 것이다 . 한편 표지그림 속 현대인의 시선이 귀환시키는 이들 ‘구여성’은 기억 저편으로 내팽개쳐졌던 과거의 한 편린에 그치지 않는다 . 박물관의 유물 처럼 과거가 과거로만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불안을 야기하지 않는다 . 정작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로 환기되기 때문이다 . 장아이링은 억압되었던 여성의 시간들 을 함께 귀환시키는데, 무엇보다 이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시간은 과거 속 여성 의 시간과 이어지며 “모든 시대를 통해 인류가 살아온 기억 ”34)의 누적 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여성’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신여성’이기도 한데, 여기서 반전통주의 민족담론의 신 / 구 여성이라는
이분법은 설 곳을 잃게 된다 . 예컨대 「경성지련」의 류쑤나 「연환투」의 니시처럼 경제적 버팀목으로 남자가 필요한 여성들의 경우, “남자 물주를 따라 전전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삶은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을 통해 순환적 시간 속에 존재한 다. 작은 순환들의 연속과 누적인 여성들의 시간은 직선 끝의 목표를 위 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비장함도 없고 ,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는 숭고한 이상도 없다”.35) 순환적인 여성의 생애주기는 직선적이고 진보적이며 미 34) 張愛玲, 「自己的文章」, 張愛玲文集4(安徽文藝出版社, 1992), 174쪽. 35) 임우경, 「<경성지련>의 쓸쓸한 계시: 계몽담론의 ‘노라’ 허상」, 중국문화연구, 창간호(200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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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지향적인 민족의 교의적 시간과는 분명 다른 이질적 시간이다 . 장아이 링 텍스트에서 도라형 인물들의 주동성은 미래에 대한 진보의 신념이 아니라 여성들의 집적된 기억, 즉 여성들의 역사적 삶과 체험의 집약에 서 비롯된다. 따라서 “장아이링 소설에서 끊임없이 가시화되는 여성의 시간은 민족주의적 계몽담론이 건설하고자 하는 근대적 시간의 균질성 을 깨뜨리고 위협하는 유령같은 존재 ”36)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장아이링은 유령같은 이들 여성의 시간에 육체성을 부여한다 . 육체성은 바로 디테일을 통해 완성된다 . 귀환된 여성들의 시간은 장아이 링의 작품 속에서 홍목으로 만든 침대 , 창문에 드리운 커텐, 치파오에 새겨진 구름무늬 자수, 숄 가장자리의 바이어스, 족자 위에 수놓아진 목 숨수(壽)자 바탕 같은 디테일 속에 반복해서 중첩되고 각인된다 . 크고 작은 가구들, 족자, 의복, 머리모양과 같은 수많은 디테일은 바로 귀환 되는 시간들이 집적되며 구체적 형상으로 물질화되는 거소이다 . 그중에 서도 집은 수많은 디테일들의 집합지이자 그 자체가 여성의 시간을 공 간화 하는 거대한 디테일이다 . 표지그림의 현대인이 응시하고 있는 대상 이 여염집 내부의 풍경인 것도 그와 관련된다 . 길이 시간이 흐르는 곳이 라면, 집은 시간이 머무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모두 균질한 것은 아니다. 디테일들은 저마다 자기 안에 다양한 시간의 흐름 을 깃들이게 하며 각자가 놓여 있는 여기저기에서 디테일들의 숫자만큼 많은 여기저기의 시간들을 드러낸다 . 그리하여 집은 균질한 과거의 시간 으로 획일화되는 공간일 수 없다 . 다만 장아이링에게 있어 “모든 시대를 통해 인류가 살아온 기억, 그것은 막연한 미래보다 훨씬 분명하고 친밀 하다”는 점에서 집은 기억의 거소인 수많은 디테일들을 하나로 엮어내 는 공간이다. 표지그림에서 얼굴 없는 현대인이 바라보는 집안풍경이 탁 자의 무늬 하나, 옷 위의 무늬 하나까지 세심하게 표현된 것은 집이 바 로 그와 같은 디테일들의 메타공간임을 암시한다 . 장아이링도 말했지만 시녀도의 집안풍경은 저녁시간 어디서나 볼 수
36) 앞의 글,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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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직한 친숙한 풍경이지만, 그 친숙함은 민족주의 계몽담론에게는 ‘두 려운 낯설음(unheimlich)’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어 ‘unheimlich’ 는 ‘집과 같지 않은’, ‘편안하지 않은’이라는 뜻에서 ‘두려운 낯설음’, ‘두려운
이상함’, ‘불안하게 하는 이상함’ 등의 의미로 연신된다. 프로이트에 의하 면 ‘두려운 낯설음’의 기원은 ‘억압되어 있던 친숙한 것 ’이다. 즉 ‘두려운 낯설음’이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 정이며, 어떤 조건들이 주어졌을 때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불안감을 주 고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 ‘두려운 낯설음’이 란 우리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었을 뿐 사실은 우리들에게 가장 가 까이에 있는 ‘친밀함(heimlich)’의 귀환에 의한 효과인 것이다 . 가장 친 숙한 공간인 집이 어느 순간 ‘두려운 낯설음’의 공간이 되는 비밀이 여 기에 있다.37) 이 ‘두려운 낯설음’이야말로 장아이링 전기의 전기성을 해명하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 디테일로서의 집과 집의 디테일들은 너무나 친숙하지만, 약자들의 비균질적 시간을 물질화하는 거소라는 점에서 그것은 민족주의적 계몽담론이 동질적 시간으로 근대 를 기획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장아이링에게 디테일 의 묘사는 ‘정치적 무관심’을 가장한 정치이기도 하다 . 증정판의 표지그 림에서 시녀도의 인상적인 세부묘사는 얼굴 없는 현대인의 시선과 대비 되면서 친숙한 대상을 두렵고 낯선 대상으로 전화시킨다 . 독자의 민족주 의적 불안은 여기서도 파생된다.
5. 參差對照: 민족상상의 균열 혹은 보충
앞서 필자는 장아이링이 억압되었던 여성들의 시간을 귀환시킴으로써 독자에게 ‘두려운 낯설음’을 느끼게 한다고 분석했다. 귀환되는 여성들의 37)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열린책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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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두려운 낯설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것이 그동안 민족주의적 계몽담론에 의해 억압되어야 했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 이들 존재는 민 족의 균질적 시간을 상상하고자 하는 민족주의 계몽담론에 대해 비균질 적 시간들을 들이밀고 그 상상에 파열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 따라서 여성 시간의 귀환으로 인한 ‘두려운 낯설음’이야말로 전기의 전기성을 이루는 핵심이며 민족주의적 독자의 불안을 낳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장아이링과 전기는 마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된 듯 보이 지만 ‘두려운 낯설음’의 파생 자체는 남성중심적 민족상상에 대한 거부 , 혹은 균열내기라는 점에서 일종의 저항정치로 볼 수 있다 . 그런데 여기서 아직 한 가지 설명되지 않은 점이 있다 . 앞서 필자는 전기 증정판이 한간비판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구성되었다고 전제했는
데, 지금까지 분석으로만 놓고 보면 장아이링의 문학세계는 확실히 주류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반민족주의자 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변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 그런데 이렇게 그녀를 반민족주의적인 위치에 놓고 보면 「중국의 주야」에서 보여준 ‘중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 이 양자의 불 / 연속적 관 계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장아이링이 정치적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에 할 말이 없게 된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다시 호미 바바의 ‘서사로서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돌아가 보자. 바바는 서사 자체가 교의적 시간성과 수행적 시 간성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서사의 수행적 시간성의 실천적 가능성 에 기대를 거는 듯 하다. 왜냐하면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서사가 수 행되는 사이 ‘시간적 지연’을 낳고 이 지연 속에 타자들의 언표작용이 이루어지며 변화의 가능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 바바는 바로 이 지점을 현대성과 민족의 문제가 보충질문되는 경계로 본다 . 보충질문이란 원래 의 질문 속에 부차적이고 ‘뒤늦은’ 것―민족서사의 교의적 시간 속에서 부단히 배제되는 타자성처럼―을 틈입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보충질문 은 대개 민족현대화라는 전진의 충동이나 목적론에 기반한 민족서사의 교의적 시간을 방해하면서 정체성의 차이들을 드러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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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민족상상이란 필연적으로 민족이라는 집단의 공통된 정체 성을 추구하는 서사로 나아가기 마련이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주 체들의 반복되는 민족서사는 수행과정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민족상상 을 보충하면서 다른 서사들과 경합한다 . 문제는 민족을 균질하고 동질적 상상으로 채우려 하는 교의적 민족서사 , 특히 그 동질성을 남성적인 가 치들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남성중심적 민족서사들은 자기와 다른 민족 상상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억압하려 한다는 점이다 . 장아 이링은 바로 그와 같은 억압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민족서사에 반기 를 들었던 것이지 민족서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 심지어 그녀가 구축해낸 디테일의 세계와 그것이 대변하는 여성들의 시 간은 사실 또 다른 차원의 민족상상을 구성하는 민족서사라고 할 수 있 다. 사실 장아이링에게 민족의 삶은 애초부터 균질적이거나 체계적인 것 이 아니라 “유성기 몇 대가 동시에 각자 울리며 이루어내는 혼돈 ”38)이 라고 여겨졌다. 민족은 그녀에게 “덧대고 또 덧대고, 기우고 또 기워서 / 짜깁기한 채색 구름 같은 사람들 ”39)로 다가왔다. 다만 그중에서 그녀가 좀더 애정을 가졌고 또 그들이야말로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인 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혁명이나 전쟁처럼 ‘비양’하는 세계에 속한 사람 들이 아니라 “하루 세끼 밥 먹는 일의 고단함과 번잡함 ”40) 속에 묵묵히 시대를 건너가는 보통 사람들, 세상 사는 것이 조금은 억울하지만 그래 도 적당히 영악하게 이속을 차리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 장아이 링은 참치대조(參差對照)41)라는 서사수법을 통해 이런 보통 사람들을 민 족상상의 한가운데로 밀어올렸다. 장아이링은 비극이 극과 극이 결합된 강렬한 대조의 결과라면 자신의 추구하는 창량함이란 그보다 훨씬 더 긴 여운이 남는 일종의 참치대조라고 말한다 . 참치란 들쭉날쭉한 모양을 38) 張愛玲, 「燼餘錄」, 張愛玲文集4(安徽文藝出版社, 1992), 53쪽. 39) 張愛玲, 「中國的日夜」, 앞의 책 247쪽. 40) 張愛玲, 앞의 글. 앞의 책 247쪽. 41) 張愛玲, 「自己的文章」, 앞의 책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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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영혼과 육체처럼 완전히 상반되 는 것들의 맞비춤이 아니라 , 거짓 속에 진실을 담고 화려함 속에 소박함 을 담는, 즉 서로를 기대도록 겹치고 덧대는 것이다 . 그것은 여성을 비 롯한 약자들의 순환적이고 누적되는 시간들을 선행하는 민족서사 속에 틈입시킬 뿐 주류서사를 전복하지는 않기에 숭고하거나 낭만적일 수 없 으며 그저 쓸쓸할 뿐이다. 이처럼 다성악적 혼돈 혹은 참치대조적인 세계로 민족을 상상했던 장 아이링의 서사는 진보와 발전, 단절과 혁명, 전쟁과 역사와 같은 극단적 대조 및 일직선적 시간을 상정했던 민족서사와는 확실히 달랐다 . 장아이 링은 이들에 저항했지만 민족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으며 , 자신만의 독특 한 민족상상의 내용을 구축했다 . 그중에서도 장아이링이 길어올린 순환 적이고 중첩된 여성들의 시간과 그것의 물질화된 형식으로서 디테일의 세계는 저 먼 태고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공동체를 상상 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친밀하고 오래된 기억’에 대한 장아 이링의 글쓰기가 일부논자들에게는 여전히 불만일 수 있지만 동시에 어 떤 고유한 ‘중국적인 것’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독자의 민족주주의적 충 동을 만족시켜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 요컨대 장아이링은 남성 중심적 민족서사에 과감히 균열을 내고자 했으며 동시에 그 균열 속에 낯선 민족상상을 틈입시켰다고 할 수 있다 . 민족서사에 균열을 내면서 또 다른 상상을 보충해 넣는 장아이링의 문학세계와 그 서사전략을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민족과 여성의 관계, 혹은 민족주의를 분석하는 데 있어 많은 시사점을 제공받는다 . 우 선 그것은 여성과 민족 / 국가를 절대적 대립관계로 보는 일부 페미니즘적 관점 역시 수정되어야 함을 시사해 준다. 둘째, 장아이링의 글쓰기는 타 자로서의 여성이 민족 / 국가에 의해 배제되기 일쑤지만 동시에 스스로 다 양한 협상의 공간을 만들며 그 서사에 참여해 온 복합적 주체임을 확인 해 준다. 셋째, 그것은 민족이란 선험적이고 동질적이며 고정된 어떤 실 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질적인 것들의 부단한 절합이며 서사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함을 보여준다. 즉 민족을 여성과 대립된 어떤 고정되고 동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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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며 불변하는 실체로 보기보다 , 전통과 현대 사이의 시간을 분절하고 현대의 민족이라는 이념의 필요성에 따라 부단히 과거의 기호들을 자의 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자신을 상상하고 자기동일성을 추구해가는 텍스 트적 구성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 이쯤 되면 장아이링을 한간 이라고 비난하는 담론들이 얼마나 단순하며 심지어 폭력적 권력을 행사 하고자 하는지 짐작될 것이다 .
【 參 考 文 獻 】
◈ 중문자료 張愛玲, 張愛玲文集, 合肥: 安徽文藝出版社, 1992. 王得威 編, 閱讀張愛玲 ― 張愛玲國際硏討會論文集, 臺北: 麥田出版社, 1999. 林幸謙, 張愛玲論述; 女性主體與去勢模擬書寫, 臺北: 洪葉文化事業有限 公司, 2000. 林幸謙, 歷史, 女性與性別政治 ― 重讀張愛玲, 臺北: 麥田出版社, 2000. 林幸謙 編, 張愛玲: 文學⋅電影⋅舞臺, Hongkong: Oxford, 2008. 劉紹銘 外 編, 再讀張愛玲, 濟南: 山東畵報出版社, 2004. 戴錦華⋅孟悅, 浮出歷史地表;中國現代女性文學硏究, 鄭州: 河南人民出 版社, 1989. 周 蕾, 婦女與中國現代性, 臺北: 麥田出版社, 1995. 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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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思和, 「民間與現代都市文化; 兼論張愛玲現象」, 現當代文學復印報刊, 19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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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간, 서사 그리고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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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現代文學 第55號
【Abstract】
The Women’s Time, Narrative and Nation: A Symptomatic Reading of the Eileen Chang(張愛玲) ’s Chuanqi(傳奇)
Im, WooKyung This paper tries to analyse what the ‘anxiety’ is as shown in the , Legend) from the Eileen Chang(張愛玲)'s short stories Chuanqi( 傳奇
perspective of the women and national imaginary relation. The special edition of the Chuanqi was published in fall, 1946, when Eileen Chang was lashed out ‘traitor(漢奸)’ after the defeat of the Japanese Empire. She couldn't choose but explain about her being a ‘traitor’ in order to stand up again as a writer, and we can trace her explanation in the foreword “To the Readers(有幾句話同讀者說)” added to the special edition, the epilogue “Day and Night in China (中國的日夜)” and the new cover picture. Eileen Chang flatly denied her being a ‘traitor’ in the “To the Readers”, and in the “Day and Night in China” did she do the same indirectly through an emotional telling of everyday life right after the Liberation. She also wrote that she changed the cover picture with the intention to send the audience ‘anxiety’. Laying all this as background agai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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